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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의료사회복지사가 필요하다”

동사협 0 659 2022.06.10 09:25

이상진 아주대학교병원 사회사업팀장,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





어느 대학병원 의료사회복지사의 하루

아침 8시, 출근하자마자 오늘 상담 의뢰된 환자 목록을 확인한다. 오늘 우선적으로 만나 상담해야 하는 환자들이다. 오늘은 여러 과에서 총 13명의 환자를 상담 의뢰했다. 이들의 의무기록을 먼저 살펴본다. 어떤 병으로 입원했는지, 어떻게 치료받고 있는지, 언제 퇴원할 수 있을지 등등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의무기록을 살펴본 다음에는 요일에 따라 의료진과 함께 회진에 참여하기도 한다. 팀워크를 강조하는 최근 병원현장에서는 의료 사회복지사가 치료팀의 중요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회진에서는 환자의 심리사회적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담내용을 의료진과 공유하기도 한다. 회진에 참여하지 않는 날에도 오전 9시 경이면 사회복지사 혼자서라도 병실 순회 방문을 한다. 담당 환자들 병실로 직접 찾아가 밤새 잘 지냈는지, 치료는 잘 받고 있는지, 추가로 상담하고 싶은 게 있는지 살펴본다.

오전 10시엔 집중치료실을 방문한다. 하루 한 번 있는 면회시간에 내원한 가족을 직접 만나 상담하기 위해서다. 어제 새로 입원한 중환자의 가족들에게 면회 후에 사회사업팀 상담실로 와서 상담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오전에는 상담실에서 미리 약속한 환자나 보호자들과 상담한다. 오늘은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를 위해 간 기증을 하는 외아들과 상담이 있다. 장기기증 상담평가는 의료사회복지사만이 수행할 수 있는 전문적 활동의 하나다. 의료사회복지사의 장기기증 상담평가를 거쳐야만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승인을 받고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

다음에는 이번에 처음으로 백혈병 진단을 받은 환자와 상담한다.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이 자기에게 왜 생겼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다는 환자와 초기 면담한다.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고, 심리적으로 잘 수용하고, 앞으로 치료과정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과도 계속 상담할 예정이다. 사회복지사는 이처럼 각종 암 진단을 처음 받은 환자들과 진단 초기부터 상담하면서 환자의 스트레스 완화 관리 등을 돕게 된다. 백혈병 환자와 상담을 마치자마자 선천적 희귀질환을 갖고 태어난 미숙아의 부모와 상담한다. 아직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젊은 부모를 위해 국가에서 제공하는 미숙아의료비지원제도를 안내하고, 길기만 한 치료기간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 치료동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환자와의 상담이 잠시 뜸한 틈을 타 올 여름에 진행할 소아당뇨캠프 기획안을 검토한다. 소아당뇨 환아들을 위한 생활요법을 중심으로 집단활동과 집단상담을 준비한다. 소아당뇨 담당의사와 간호사, 영양사와 함께 할 당뇨 교육자료도 수정 보완한다.

오후 업무는 응급실에서 급하게 걸려온 전화로 시작한다.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환자가 넘어져 뇌출혈이 의심되는 상황인데 돈이 없어서 입원하지 못하겠다고 한단다. 곧바로 응급실로 가서 환자 상담을 시작한다. 자기를 돌봐줄 가족이 없다는 환자에게 노숙인 지원센터를 연계해 보기로 한다. 달리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이 환자의 긴급한 수술을 위해 민간 후원기관에 진료비 지원을 신청하고, 환자가 수술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응급환자 와 같이 긴박한 상황에서는 사회복지서비스도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매번 상담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상담내용을 의무기록에 입력해야 한다. 다른 상담이 연이어 있을 때는 퇴근 전에 몰아서 한꺼번에 정리하기도 한다. 행정업무도 중간 중간 짬을 내어 한다.

응급실 환자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 척수손상으로 재활치료를 받은 환자와 퇴원해서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자원과 기관 연계, 장애인 이동지원 등 퇴원계획에 대해 상담한다. 병원에서도 지역사회와의 연계, 보건과 복지의 협업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 이 일을 의료사회복지사에게 일임하고 있다. 환자의 치료과정뿐 아니라 퇴원 후 생 과 사회적응, 변화된 삶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의료사회복지사의 임무다.

퇴근 전에는 며칠 전 임종한 말기 암환자의 가족들이 사회사업팀에 들렀다. 완화병동에서 호스피스 상담을 받던 환자의 가족들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의미있게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전한다. 오늘도 꽤나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나 상담했다. 다양한 질병을 가진 취약계층 환자들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잘 치료받아 건강해질 수 있도록 심리사회적 중재를 하는 의료사회복지사의 하루다.

 

우리나라 의료사회복지의 발자취와 현재

1958년 한노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사회적 빈자들에게 대한 의료비 지원 업무와 결핵환자들을 돕는 것으로 처음 시작된 우리나라 의료사회복지는 64년 동안 놀랄 만큼 확장·발전했다. 1973년 의료법 시행규칙에 종합병원에 사회복지사를 두도록 했고, 1977년부터는 의료사회복지 활동 일부에 대해서 건강보험 수가가 적용됐다. 1981년에는 병원표준화 심사제도에 의료사회복지 부문을 신설해 의료사회복지활동의 구조적 근거가 마련됐다. 1994년에는 재활의학적 사회복지활동 수가가 신설됐고, 1995년에 ‘정신보건법’이 제정되어 정신의료사회복지도 더욱 확대됐다. 2000년에는 장기이식분야에서 의료사회복지사의 업무 근거가 법적으로 마련되기도 했다. 그동안 현장의 수많은 의료사회복지사들은 모든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화에 힘써왔고, 그 결과 2020년에 이르러 의료사회복지사 전문자격제도가 신설됐다.

사회환경 변화와 복지정책 확대, 의료환경 급변으로 의료현장에서 사회복지서비스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초창기 의료사회복지사의 주된 업무가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를 지원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과도한 병원비로 경제 파탄에 이르게 되는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서 시행하는 여러 가지 복지정책과 제도를 의료현장에 접목하고, 환자의 심리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서비스 및 환자들을 위한 여러 복지제도와 정보를 제공하며, 자조모임과 교육 등 다양한 집단활동을 운영하기도 한다.

의료사회복지서비스 대상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급격한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롭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살시도자, 학대받는 아동과 노인, 다문화가족, 중증외상 환자 등 보다 다양한 환자들이 의료사회복지사의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의료사회복지사들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환자와 가족들에게 환자가 처한 상황에 꼭 맞는 사회복지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400여 개 병원에서 총 800여 명의 의료사회복지사가 일하고 있다. 약 500여 명의 사회복지사들이 의료기관에서 일하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은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앞으로 의료사회복지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보건과 복지의 연계·통합을 지향하면서 모든 국민들을 위한 폭넓은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국가 정책과 더욱 복잡해지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의료사회복지계에도 더 큰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의료사회복지계에 필요한 변화와 혁신

우선 병상 규모별 의료사회복지사 정원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 의료현장에서의 복지서비스는 생명의 존엄성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아울러 늘어가는 복지 서비스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의료사회복지사의 적정한 정원이 보장돼야 한다. 대만 등 외국에서는 의료기관 평가 기준에 의료사회복지사 병상당 적정정원이 반영돼 있다.

다음으로는 의료사회복지사가 치료팀의 일원으로서 환자 치료와 전인적 돌봄, 지역사회복귀와 통합적인 서비스 제공에 관여하는 활동에 대해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해야 한다. 1973년 인정된 정신건강사회복지 활동에 대한 수가, 1994년에 인정되기 시작한 재활의학적 사회복지활동 수가, 2000년 장기이식분야에서의 비급여 수가 외에는 건강보험 수가 항목은 거의 전무하다. 보다 전문적이고 책임있는 서비스 제공과 전달을 위해 의료사회복지사의 활동에 대해 건강보험 수가가 반드시 인정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업무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점점 더 지역사회와 병원 간의 교류와 연계가 중요해지고, 공공의료 영역이 확대될 것이다. 보건복지서비스가 지역사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에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사회복지서비스로 확대·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의 공공성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공공의료영역에서 활동하는 의료사회복지사의 양적 확대도 노려볼 만하다.

사회 변화와 의료기술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의료사회복지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에게는 의료사회복지사가 더욱 더 필요하다.

출처 : 복지타임즈(http://www.bokj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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