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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포괄케어 20년, 일본 경험으로 본 한국 통합돌봄의 과제

동사협 0 494 10.16 09:28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은 일본이 20여 년간 발전시켜온 대표적 돌봄 모델이다. 그러나 제도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 한계는 한국이 2026년 돌봄통합지원제도 시행을 앞두고 반드시 주목해야 할 교훈을 던진다. ‘지역성’이 가진 양면성을 드러낸 일본의 경험은, 한국이 지역 통합돌봄 체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균형과 공공성, 그리고 당사자 참여를 제도 초기부터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고령자가 익숙한 지역이나 자택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AIP(에이징 인  플레이스·지역사회 지속 거주)는 서구 사회에서 먼저 자리 잡은 노인복지 패러다임이다. 1982년 유엔 비엔나 세계노후회의에서 발표된 ‘국제고령화행동계획’은 AIP를 고령자 케어의 기본 원칙으로 명시하며, 고령자가 가능한 한 오래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후 AIP는 단순한 거주 문제를 넘어, 고령자의 존엄성과 삶의 연속성을 실현하는 사회적 가치로 확장되었고, 국제적으로도 ‘지역사회 기반 케어(community-based care)’라는 정책 틀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제도 변화와 지역포괄케어의 구조

일본은 2000년 개호보험제도 도입 이후, 2005년과 2011년의 법 개정을 거쳐 시정촌(기초지자체)을 중심으로 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구축했다. 2005년 개정에서는 ‘고령자가 존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명확히 하고, 재택과 지역 중심의 케어 구조를 제도화했다. 2011년 개정에서는 고령자가 가능한 한 익숙한 지역에서 자립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의료·복지·예방·생활지원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추진한다는 조항을 법에 명시했다.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은 주거, 의료, 개호, 예방, 생활지원의 다섯 요소가 상호 연계되어 통합적으로 제공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재택서비스(방문개호·방문간호)와 시설 서비스(특별양호노인홈 등), 개호예방 서비스, 지역사회 기반 생활지원이 결합돼 공식적 서비스와 비공식적 자원이 상호 보완하는 형태를 지향한다. 운영은 시정촌 단위의 자율성과 지역 내 자원 활용에 기반하며, 지역포괄지원센터가 종합 상담·연계·권리옹호의 허브 역할을 맡는다. 즉, 시정촌이 지역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바탕으로 설계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고령자의 자기결정과 지역밀착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AIP의 일본형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제도 운영의 한계

그러나 제도의 변천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단순한 시행착오를 넘어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 권한 이양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재정·인력·시설 인프라에 대한 충분한 준비 없이 추진된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지역 간 자원 격차가 서비스 격차로 직결되었고, 고령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재정력과 사회적 자원 수준에 따라 케어의 질이 달라지는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됐다. 예컨대 재택의료를 지원하는 ‘홈 케어 지원 클리닉’의 분포를 보면, 도시 지역에 비해 농촌은 공급이 현저히 부족하며, 이러한 격차는 수년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1만 명 이상이 거주함에도 의사가 전혀 없는 곳도 존재하는 등 의료 접근성의 불평등이 심각하다.

또한 제도 설계와 개정 과정에서 공식 서비스가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가족이나 지역 커뮤니티가 담당하도록 하는 구조가 제도적으로 강화됐다. 가사, 식사 지원, 응급 호출, 안부 확인 등은 비공식 서비스 영역으로 전가되면서 ‘자조·상호·공조·공적 지원’의 균형이 무너지고, 지역과 가정에 과도한 부담이 지워졌다. 이는 공식 돌봄의 보완책이 오히려 제도적 책임을 비공식 자원으로 이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개호보험 개정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는 재정 안정성과 효율성을 개혁의 핵심 목표로 내세우며,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재택에서의 마지막’을 정책의 우선 전략으로 설정했다. 겉으로는 ‘고령자의 존엄’과 ‘원하는 장소에서의 생활 보장’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의료·개호 재정 부담 완화를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접근은 돌봄의 본질적 가치보다 재정 절감을 우선시하게 만들고, 고령자의 삶의 질 보장이라는 목표를 희석시킬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제도 운영 과정에서 고령자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 서비스 결정과 조정이 공급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고령자가 원하는 서비스나 마지막 거주지를 선택할 권리가 제한되고 있다. 특히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서는 재택케어를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시설 입소나 장기 병원 생활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지역포괄케어’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 운영은 지역의 조건과 재정 상황에 따라 삶의 마지막 선택이 좌우되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2026년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일명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일본의 경험은 한국이 지역 기반 통합돌봄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피해야 할 함정과 준비해야 할 과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첫째, 분권과 형평성의 균형이 필요하다. 일본은 권한을 시정촌으로 대폭 이양했지만, 재정·인력·인프라 지원이 부족해 지역 간 격차가 확대됐다. 한국도 지자체 자율성 강화는 바람직하나, 국가 차원에서 서비스 최소 기준을 보장하고 취약 지역에 대한 추가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는 재정 배분 공식과 인력 배치 기준을 마련하고, 지역별 취약 요인을 사전에 진단해 맞춤형 보완책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공식·비공식 돌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일본은 재정 압박을 이유로 공식 서비스의 공백을 가족과 지역 커뮤니티가 메우도록 제도화했다. 한국의 통합돌봄 역시 지역 주민조직과 자원봉사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이는 공식 서비스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보완하는 기능이어야 한다. 돌봄의 최종 책임은 국가와 지자체가 지도록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셋째, 고령자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서비스 조정이 공급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고령자의 욕구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고령자 본인과 가족이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케어계획 회의에 당사자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서비스 이용 후 평가를 정책 개선에 반영하는 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맺음말

지역성은 고령자의 삶과 밀착된 맞춤형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지만, 준비 없는 분권은 불평등과 배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한국이 돌봄통합지원제도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자원과 책임의 균형 있는 이양, 공식 서비스 중심의 공공성 확보, 당사자 참여보장, 현장 실행력 강화를 제도 초기부터 병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 중심 돌봄’이라는 이상은 오히려 고령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가족 책임을 강화하며, 궁극적으로 고령자의 니즈를 소외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출처 : 복지타임즈(http://www.bokj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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